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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 탐방
1. 개요
한양도성길은 조선 시대 한양의 도성을 따라 조성된 도보길이다.
총 길이는 약 20km 가량 되고, 한양도성 4대문 위주로 4개의 구간으로 나누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4대문 외에도 문은 많다.ㅎ
1구간 (흥인지문 ~ 숭례문) : 동대문, 광희문, 남소문, 남산, 서울타워, 백범광장, 남대문시장, 숭례문 등을 지나는 구간.
2구간 (숭례문 - 창의문) : 숭례문, 소의문터, 돈의문터, 경희궁, 인왕산, 윤동주시인의언덕, 창의문 등을 지나는 구간.
3구간 (창의문 - 혜화문) : 창의문, 백악산, 청운대, 숙정문, 와룡공원 혜화문 등을 지나는 구간.
4구간 (혜화문 - 흥인지문) : 혜화문, 낙산공원, 동대문 등을 지나는 구간. 동대문을 지나 청계천 광장시장 거쳐 광화문행.
한양도성길은 도심과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조선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양도성길은 자신의 체력과 취향에 맞는 구간을 선택하여 걷는 것이 좋다. 접근성이 쉬워서 친구나 지인들과 쉽게 만나 적당히 구간을 정하여 걸을 수 있다. 도성길 주변에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아서 트레킹을 마치고 뒷풀이도 어렵지 않다.
도보 여행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도보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 가이드와 함께 도성길을 걷으며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도보 여행 프로그램에는 식사와 휴식 시간이 포함되어 있어 편리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해설구간안내
한양도성길 해설 프로그램 링크 참조 > 서울 한양도성 (seoul.go.kr)
1구간(백악) (창의문~혜화문) 4.7km 약 3시간 소요/난이도: 높음 [상세보기]
창의문 → 창의문안내소 → 돌고래쉼터 → 백악마루 → 1.21사태소나무 → 청운대 → 암문 → 백악곡성 → 촛대바위 → 숙정문 → 말바위안내소 → 와룡공원 → 암문 → 경신고등학교 →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옛 서울시장공관) → 혜화문
2구간(낙산) (혜화문~ 광희문)3.2km 약 1시간 30분 소요/난이도: 보통 [상세보기]
혜화문 → 장수마을 → 암문 → 낙산공원 놀이마당 → 이화마을 → 한양도성박물관(서울디자인지원센터) → 흥인지문공원 → 흥인지문 → 오간수문 터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간수문) → 동대문역사관 → 광희문
3구간(남산) (광희문 ~ 숭례문)5.4km 약 3시간 소요/난이도: 약간 높음 [상세보기]
광희문 →천주교 신당동교회 →장충체육관 →우수조망명소(용산구 방향) →국립극장 →나무계단길 →남산공원 이용 안내센터 →N서울타워 –남산 팔각정(목멱산 봉수대 터) →남산 케이블카 승강장 →잠두봉 포토아일랜드 →한양도성 유적전시관(건립중)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백범광장 →숭례문
4구간(인왕) (숭례문 ~ 창의문) 5.3km 약 3시간 소요/난이도: 높음 [상세보기]
숭례문 → 남지 터 → 대한·서울상공회의소 → 소의문 터 → 배재학당동관·배재공원 → 러시아대사관 → 창덕여중 → 돈의문 터 → 돈의문박물관마을 → 경교장 → 월암공원 → 홍파동 홍난파 가옥 → 인왕산 순성안내쉼터 → 인왕산 곡성 → 범바위 → 인왕산 정상 → 윤동주 시인의 언덕 → 창의문
창의문 ↔ 말바위 구간 2.2km 약 1시간45분 소요/난이도: 높음 [상세보기]
창의문 → 창의문안내소 → 돌고래쉼터 → 백악마루 → 1.21사태소나무 → 청운대 → 암문 → 백악곡성 → 촛대바위 → 숙정문 → 말바위안내소
2. 서울 한양도성 사적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 흥인지문 · 숭례문 · 돈의문이며 4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 혜화문 · 광희문 · 소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남쪽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한양도성은 순성길을 따라 하루에 돌아볼 수 있지만, 내사산을 중심으로 한 백악·낙산·남산(목멱산)·인왕산 구간과 도성이 멸실된 흥인지문·숭례문 구간 등 6구간으로 나누어 걷기를 추천한다.
3. 코스 및 지도
4. 한양도성 종주 인증
5. 한양도성 탐방
1차 탐방 - 2022.09.08 (서울역 - 숭례문 - 돈의문 - 인왕산 정상 - 기차바위 - 청운문학도서관 - 창의문 - 경복궁 - 서울역)
2차 탐방 - 2022.09.24 서울 트레일런
3차 탐방 - 2022.10.02 (서울역 - 숭례/돈의문 - 인왕/백악산-창의/숙정문 - 혜화문 - 흥인지문 - 광장시장 - 남산 - 서울역)
4차 탐방 - 2022.11.26 (서울역 - 숭례/돈의문 - 인왕/백악산-창의/숙정문 - 혜화문 - 흥인지문 - 광희문 - 남산 - 서울역)
계양역 주차하고 공항철도로 서울역으로 이동,
서울역에서 남대문 이동, 그리고
탐방 시작
남대문
남대문은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의 4대문 중 남쪽 대문입니다. 남대문은 숭례문이라고도 불리며, 서울 도성의 남쪽 정문이라서 통칭 남대문이라고 불린다.
1395년에 건립되었으며,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200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2013년에 복원되었다.
남대문은 높이 18m, 너비 12m, 폭 10m 규모의 5단 누각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남대문의 정면에는 '숭례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숭례문은 '禮'라는 글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예절'과 '치례'를 뜻한다. 즉, 남대문은 조선 시대의 수도인 한양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예절을 갖추고 들어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한다.
숭례문이 국보 제1호로 지정된 것은 1962년이다. 당시 숭례문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조선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았다. 또한,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이 남대문을 불태우려 했으나, 조선의 군사들이 이를 막아낸 사건은 조선의 저항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숭례문이 국보 제1호로 지정된 것에 대한 논란도 있다.
숭례문은 2008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복원 과정에서 원형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숭례문은 조선 시대의 관문이라는 의미만 있을 뿐, 조선 시대의 건축과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적지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국보 제1호를 남대문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국보 제1호라는 이름 자체가 일제의 잔재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따라, 국보 제1호는 '서울 숭례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 신동아 2019. 12. 07 인용 ]
숭례문과 국보 1호의 인연은 193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4년 8월 27일 일제가 조선의 보물을 지정하면서 숭례문(당시는 경성 남대문)에 보물 1호의 번호를 부여했다. 당시 일제가 숭례문의 가치를 특별히 평가했던 것이라기보다는 편의상 1호를 붙인 것으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일제가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숭례문을 거쳐 한양에 입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보물 1호로 정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후 1955년, 1962년 우리 정부가 국보, 보물을 지정하면서 일제가 부여한 번호를 계속 이어받았고 그렇게 해서 숭례문은 국보 1호가 됐다.
돈의문
돈의문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돈의문은 1396년에 건립되었으며, 이름은 유교의 덕목인 인의예지신 중 의(義)를 넣어 만든 것이다. 돈의문은 1904년 일본군이 돈의문으로 입성하면서 유명해졌다. 현재 돈의문은 서대문구에 소재하고 있으며, 돈의문역사관 / 돈의문박물관마을 통해 돈의문 일대의 역사와 장소,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참조]
서울 성곽의 4대문(四大門)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일명 ‘서대문(西大門)’이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의 도시 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을 핑계로 철거되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원래 자리가 경희궁터에서 독립문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쯤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890년대 말쯤에 찍은 사진을 통해 대략적인 모습을 알 수 있다. 견고하게 쌓은 돌축대 한 가운데에 위쪽을 반원형으로 두른 홍예문(虹霓門)을 큼지막하게 내어 도성의 출입을 가능하게 하였다.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의 초루(譙樓)를 세우고 둘레에 낮은 담을 설치하였다.
건물의 평면 규모나 구조상의 특징은 알 수 없다. 다만 지붕 위에 마루를 양성하고 취두(鷲頭 : 망새)·용두(龍頭)·잡상(雜像) 등을 배열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처음 세워진 것은 1396년(태조 5)으로 도성(都城)의 제2차 공사가 끝나고 8문(門)이 완성되었던 때이다.
태조 때인 1413년에 폐쇄되어 사용되지 않고 대신 태종 대에 서전문(西箭門: 서살문)을 새로 지어 도성의 출입문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세종 때 다시 서전문을 헐고 그 남쪽 마루에 새 성문을 쌓고 돈의문이라 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1711년(숙종 37) 9월에 고쳐 지으라는 왕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숙종 때 고쳐 지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서울 서북쪽의 관문(關門)으로 사용된 중요한 사적인데, 일본인들에 의해 함부로 철거된 것은 애석한 일이다.
인왕산
청운문학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에 위치한 공립 도서관이다. 2014년 10월 28일에 개관했으며, 이 도서관은 종로구립 도서관 중 하나로, 종로구 최초의 한옥 공공도서관, 도심 속의 한옥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청운문학도서관은 시, 소설, 수필 위주의 다양한 문학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도서관 아래 윤동주시인의언덕과 컨셉을 같이하는 공간 같기도 하다. 같은 컨셉으로 독서모임, 작가 특강, 북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여 시민들에게 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왕산에서 내려오는길에 청운문학도서관 쪽으로 빠지는 길을 볼 수 있다. 도서관 쪽으로 내려가면 아름다운 한옥이 눈의 띈다. 지상층 한옥 아래 지하에 서고/열람실이 있다. 지하에서 책을 빌려 지상 한옥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
지하엔 일반열람실, 아동열람실 외 다목적실과 문화교실이 있어 전시, 공연, 세미나 문학에 대한 교육을 제공한다.
청운문학도서관의 이용 안내는 다음과 같다.
- 이용 시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추석 연휴
창의문
[참조]
201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건물이다. 서울 성곽의 4소문(四小門) 가운데 하나로 속칭 ‘자하문(紫霞門)’이라고 한다. 조선초기 사료에서는 창의문 대신에 장의문(莊義門, 藏義門, 壯義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1396년(태조 5)에 도성 8문의 하나로 창건되었으나 1413년(태종 13) 이후로는 폐쇄되어 일반적인 출입은 금지되었고 다만 왕명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통행을 허가하였다.
창의문이 경복궁을 내리누르는 위치에 있다는 풍수지리설적 해석 때문에, 문은 세웠으나 수백년간 사용하지 않았고 국가적인 공역(工役)을 수행할 때처럼 긴요한 경우에 한하여 성문을 열었다.
현재의 문루(門樓)는 1741년(영조 17)에 세운 것으로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1956년에 이 문을 보수할 때 장여 속에서 묵서(墨書)가 나왔는데 여기에는 1741년 6월 16일에 상량(上樑)을 하였다고 적혀 있어서 건립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건물의 건축적 성격을 보면 숭례문이나 흥인지문(興仁之門)의 석축과 같은 양식의 축대를 작은 규모로 쌓고 그 위에 세운 단층 문루이다. 가구(架構) 방식은 평주(平柱) 위에 이익공을 얹은 다음 대들보를 설치했고 이 위에 다시 화반형(華盤形) 부재를 놓아 종보와 중도리의 짜임을 받쳤다. 종보 위에는 사다리꼴에 가까운 파련대공(波蓮臺工)을 놓아 뜬창방·장여·도리로 짜여진 종도리를 받고 있다. 천장은 서까래를 모두 노출시킨 연등천장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 물매는 가파르지 않다. 지붕마루마다 회반죽을 바르고 취두[鷲頭 : 매 머리모양의 장식]·용두(龍頭)·잡상(雜像)을 배열하고 추녀 끝의 사래[蛇羅]에는 토수(吐首 : 龍頭나 鬼頭 모양의 장식)를 끼웠다.
현재 문 서쪽으로 도로가 나 있어 통행로로 이용되고 있으므로 이 문은 여전히 닫혀 있다.
1차 탐방 (2022.09.08) 땐, 북악 출입 시각이 늦어 입산 실패 하고 내려 왔다.
계절별 출입 가능 시각 확인하고 들어가자!
백악산
청운대
숙정문
[참조]
본래 북대문(北大門)이라고도 하였다.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백악산(白岳山) 동쪽 고개에 위치하였다.
1395년(태조 4)에 숙청문(肅淸門)이 건립되었으나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
이 문은 높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길이 매우 험하다. 또 성문을 나서면 북한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동쪽으로 성북동 골짜기를 따라 내려와 동소문(東小門 : 혜화문) 밖 경원가도로 나오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한양에 출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소문을 통과했지 숙정문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숙정문보다 동소문이 한양 출입에 훨씬 빠르고 편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문을 폐쇄해도 통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영구히 닫아 두었다. 다만 한재(旱災)가 심할 때에 이 문을 열고 남문인 숭례문(崇禮門: 南大門)을 닫는 풍속이 있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 북은 음(陰)이며 남은 양(陽)이라고 한다. 한재 때 양을 억제하고 음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으로 1416년(태종 16)에 처음 시작하였다.
숙청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俗說)도 전하고 있다. 그것은 이 문이 음방(陰方: 여자의 방위)에 있는 까닭에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문은 1504년(연산군 10)에 조금 동쪽으로 옮겨 세웠는데 이 때 석문(石門)만 세우고 문루(門樓)는 건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76년 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시에서 백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할 때 태조 창건 당시의 제도에 의해 문루를 건축하고 ‘肅靖門(숙정문)’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어느 때부터 무슨 이유로 숙정문으로 개칭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1523년(중종 18) 『중종실록』의 기사 이후 역대 각 실록에 모두 숙정문으로 기록되고 있어 숙정문이라 호칭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531년(중종 26) 북정문(北靖門), 1587년(선조 20) 숙정문(肅靜門)으로도 표기된 것을 볼 때,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숙정문(肅靖門)’으로 명명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다락 없는 암문(暗門)인 것이 특색이다. 항상 닫혀 있었기 때문에 흔히 숙정문 대신에 창의문을 북문이라고 하였다.
혜화문
숙정문에서 와룡공원을 지나 시내로 내려오면 혜화문을 만날 수 있다.
혜화문에서 차도를 건너가면 낙산공원으로 가는 도성 성벽길을 만나게 된다.
[참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翼工式) 우진각지붕건물.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5년 뒤인 1397년(태조 5)에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축조하면서 함께 세웠다. 이 때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소문 가운데 동문과 북문 사이에 위치하였으므로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이 문을 나서면 수유현(지금의 수유리)을 거쳐 의정부·양주로 도로가 이어졌다. 당시 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혜화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으로 하였다가 1483년(성종 14)에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역시 홍화라고 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에 혜화로 고쳤다.
건물은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마지막으로 1684년(숙종 10)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그 뒤 한말까지 동북 방면의 성문으로 보존되어오다가 1928년에 도시의 확장과 더불어 헐렸다. 지금은 문이 있던 위치만이 알려져 있고 문과 관련된 유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문의 모습은 아래쪽에 하나의 아치형의 출입구를 둔 돌로 쌓은 육축(陸築)이 있고 그 위에 누각을 올린 것으로, 전형적인 소규모 성문의 형태를 취하였다.
육축에는 하부를 큰 장대석으로 받치고 그 위에 무사석(武砂石 : 대석의 일종으로 보통의 성을 쌓는 성석(城石)보다 훨씬 정밀하고 반듯하게 가공한 돌)을 불규칙하게 쌓아올렸으며 위쪽 좌우에 2개의 석루조(石漏槽 : 육축의 윗면 배수를 위해 성벽 상부에 설치한 석물)를 돌출시켰다. 그 상부에는 낮은 담을 쌓아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성가퀴[城堞]를 두었다. 기둥 사이에는 판문(板門)을 달았다.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에는 회반죽을 칠하고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를 올렸다. 천장에는 봉황을 그려 이 일대를 새들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다는 말이 전한다.
낙산공원
혜화문에서 도로 건너 도성 성벽길을 죽 걷다보면 한성대를 지나 낙산공원에 접어들게 된다.
낙산공원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공원이다. 낙산공원은 2002년 6월 12일에 개원하였으며, 총 면적은 199,001m3 다. 낙산공원은 낙산과 한양도성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물을 볼 수 있다. 또한, 낙산공원에서는 북악산 등산객들을 위한 안내도 제공하고 있다.
낙산공원은 광장 5개소, 도로, 산책로, 야외무대, 야생화단지, 미니화단, 정자, 파고라, 벤치, 역사탐방로, 비우당, 홍덕이밭, 낙산전시관, 화장실, 매점, 음수대, 주차장, 관리사무소, 관리초소, 공원등, 안내간판, 쓰레기분리수거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흥인지문
[참조]
1397년(태조 6) 도성을 쌓을 때 함께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세워졌다. 1452년(단종 1)에 중수가 있었으며, 조선 말기까지 존속되어오다가 1869년(고종 6)에 이르러 전반적인 개축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흥인지문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계형식(多包系形式)의 우진각지붕건물이다. 문의 석축은 화강암을 잘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았고 중앙에 홍예(虹霓: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어 출입구를 삼았으며, 석축 위에 목조의 2층 누각을 세웠다.
문의 바깥쪽에는 석축 한쪽에서부터 반원형의 평면을 이룬 옹성(甕城: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쳐서 적을 방어하는 작은 성)을 쌓아 적에 대한 방비를 견고히 하였는데, 도성 내의 여덟 개의 성문 중 옹성을 갖춘 것은 이 문뿐이다. 이 옹성 역시 창건될 때부터 마련된 것이며, 고종 때 다시 개축되었다.
옹성의 벽은 두껍게 화강석 마름돌을 앞뒤로 쌓은 위에 내외 겹으로 여장(女墻)을 돌리고 여장에는 총안(銃眼)을 만들었으며 옹성 위로는 파수꾼이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석축위에는 누각 주변으로 여장을 벽돌로 쌓고 양측에는 작은 일각문 형식의 협문을 하나씩 두어 누각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주초석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에 창방과 평방을 걸고 공포(栱包)를 짰다. 공포는 하층은 내3출목, 외2출목이며 상층은 내외 모두 3출목이다. 그 형식은 조선 말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데 살미[山彌]가 뾰족이 외부로 뻗어나와 수서[垂舌]와 앙서[仰舌]로 되어 있고, 내부의 살미 끝이 운공(雲工)주9으로 되었으며, 기둥 위에 안초공(安草工)을 두고 있다.
가구(架構)는 중앙에 고주(高柱)를 일렬로 배치하고 상하층의 대량(大樑)은 모두 이 고주에서 양분되고 맞끼어져 연결되었으며, 안쪽 네 귀퉁이에 고주를 세운 것이 그대로 연장되어 상층 우주(隅柱)를 이룬다. 상층의 평주는 하층 대량 위 중간쯤에 세워졌다.
바닥은 하층에는 중앙에만 마루를 깔고 상층은 전부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벽의 하층은 모두 개방하고 상층은 사방에 판문(板門)을 달았다. 천장은 연등천장이고 처마는 겹처마이며, 지붕의 각 마루에 취두(鷲頭) · 용두(龍頭) · 잡상(雜像)을 배치하였다.
동대문을 지나
두 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다.
첫번째는 청계천을 지나 광장시장에서 먹방을 하고 남산으로 가는 방법이다.
두번째는 정규코스대로 광희문을 지나 남산으로 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광희문은 필수 코스도 아니고 코스가 심심하기도 하여 광장시장으로 간다!
광장시장
남산
서울역
복귀
2차 탐방 - 2022.09.24 서울 트레일런
트레일런 코스는 광화문 출발 및 복귀, 한양도성길 중 숙정문 코스만 겹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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